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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일침

코스모스

우주의 압도적인 광활함 앞에서 지구는 평범한 항성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일 뿐이며, 그 안에서 일군 인간의 역사란 우주의 시간 속에서 찰나의 순간조차 되지 않는다. 이처럼 무한에 가까운 시공간을 마주할 때 찾아오는 겸손함과 허무함은 인간의 비대한 자의식을 단숨에 무력화한다. 범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 작은 창백한 푸른 점 안에서 인류가 벌이는 모든 갈등과 전쟁, 그리고 서로를 겨눈 핵무기는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자멸적 소동에 불과하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지독한 역설이 발생한다. 우주적 관점에서 철저히 무의미해 보였던 그 피비린내 나는 다툼이, 역설적으로 인류 문명을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가장 강력한 엔진이었다는 사실이다.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전쟁을 겪을 때마다 과학과 기술의 폭발적인 도약을 이뤄냈다. 더 효과적으로 파괴하고 더 빠르게 지배하려는 탐욕과 공포가 인류의 지성을 극단으로 몰아붙인 결과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지금 우주의 크기를 가늠하고 지구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 로켓과 컴퓨터의 뿌리 역시, 서로를 효율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경쟁하던 전쟁의 산물이다. 파괴를 통해서만 진보하는 이 기괴한 메커니즘, 즉 동족을 파멸로 몰고 가면서야 문명의 발전을 이뤄온 이 잔인한 패러독스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또 다른 근원적인 의문이 고개를 든다. 만약 인류가 이 파괴적인 본능과 갈등을 끝내 극복하고, 기술적 발전의 정점에서 더 이상의 결핍도 투쟁도 없는 세계를 맞이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그 안락함에 안주한 채 정체되어 서서히 도태될 것인가, 아니면 그제야 비로소 온전한 고등 지성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어쩌면 인류는 결핍과 투쟁 없이는 진보의 동력을 상실해 버리는 비극적인 시스템을 타고난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 모순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오며,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통해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냉소적인 허무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류가 가진 위험한 파괴력만큼이나, 서로를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성'과 '사랑'의 가능성을 짚었다. 결국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정체되어 도태되지 않으려면, 외적인 기술의 발전보다 인간 '정신의 진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는 생존과 지배를 위한 외부적 투쟁을 끝내고, 우리 내면의 오만함 및 야만성과 싸우는 내부적 투쟁을 시작해야 할 때인 것이다. 우주적 스케일 앞에서 이토록 미미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세상의 무의미한 다툼과 감정의 과잉에 휩쓸리지 않는 것, 그리고 스스로가 세운 엄격한 이성적 규칙에 따라 나의 행동과 책무를 수행해 나가는 것. ​그것만이 생존을 위해 축적되어 온 유전적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개인의 존엄을 유지하고, 시대의 광기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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