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유전자, 사피엔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나의 뿌리는 어딜까. 어렸을 때는 그저 나는 나였고 나의 행동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교복을 입었을 무렵부터 궁금해졌다. 나의 생김새와 사소한 생각 습관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당연히 가장 큰 영향을 준 존재는 부모님이었다. 그때부터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 진짜 내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스스로를 만들어갔다. 교복을 벗은 후에는 시선이 사회로 확장되어 주변 사람들의 삶을 모방했다. 이때의 나는 사회와 문화가 찍어낸 결과물에 가까웠다. 그러다 군복을 입게 되었다. 핸드폰도 없이 시간만 남던 정비 시간, 휴가를 얻으려 책을 집어 들었다. 그저 보상만 바라며 읽기 시작했던 책이 나의 인생과 신념을 흔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고민해왔던 내 핏속의 가장 원초적인 설계도와 마주했다. 부모의 영향과 사회의 세뇌를 받기 전부터 있던 그대로의 나. 이 질문의 끝에서 나는 내가 단순히 사회의 파편이 아니라, 수억 년을 이어온 유전자의 정교한 설계도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와 사피엔스는 나에게 기원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주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한층 더 넓혀주었다. 이 책들이 명확한 정답을 내려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몸과 인류의 설계도를 읽어낼 수 있었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견문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고, 이 지식은 나의 구체적인 일상 속 수많은 선택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우리는 자주 망각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당장 오늘 저녁에 굶어 죽는 이들이 수두룩했고 밤이면 전기도 없이 생존의 공포를 견뎌야 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인류 역사는 그저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투쟁이였다. 문제는 우리의 신체와 뇌 세포가 바로 그 결핍과 굶주림의 시대에 맞춰진 채 그대로 멈춰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와 불일치하는 우리의 설계도를 인지하고 나면 세상을 필터링하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다. 단적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정제된 탄수화물과 당류부터 자극적인 미디어와 도파민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가 급조해 낸 유혹 앞에서 내 안의 구석기시대 유전자가 어떻게 오판하고 오작동하는지 메커니즘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단 음식과 매체뿐만 아니라 관계, 불안, 선택을 내리는 모든 순간마다 이 거대한 설계도가 투영되어 있다. 우리가 이성이라고 착각하는 본능에 기반한 판단들에 일제히 브레이크가 걸리는 경험이다. 설계도를 인지한 순간부터, 유전자가 파놓은 함정과 현대 사회의 문화적 세뇌를 한 걸음 물러서서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강력한 한 단계 더 높아진 이성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은 유전자의 노예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나의 구시대적인 하드웨어를 들여다볼 줄 알게 된다면, 현대 사회의 덫들을 영악하게 우회하며 설계도를 역이용해 삶을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정해진 시스템 속에서 나만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일 것이다.
